인생에는 중요한 시점이 되는 사건들이 존재합니다. 전통적인 유교의 관점에서 보면 관혼상제(冠婚喪祭)일 것입니다. 현대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기준으로 본다면 입시, 졸업, 취업, 결혼, 출산, 가족의 사망 같은 것들이 해당될 것입니다. 이런 큰 사건들은 당사자에게 있어 기쁜 일이냐 슬픈 일이냐를 떠나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옵니다. 큰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며 전에 없던 경험을 하게 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이후 우리가 살아갈 인생의 계획을 크게 바꾸게 되는 요소가 됩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이었습니다. 물론 성인이 되고 한참 후의 일이었고 어느 정도 예상하고 받아들일 시간이 있었던 일이지만 당연하게도 극복하기 매우 힘든 일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한참 동안 참 힘든 시기를 보냈던 기억이 납니다. 아마 지금까지 살면서 종교활동을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몸이 힘들면 정신적으로 좀 나아질지 싶어서 새벽에는 수영을 다녔습니다. 잠이 안 오거나 잠들어도 일찍 깨는 일이 잦다 보니 차라리 운동이라도 하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다니던 수영장은 아버지 장례 예식을 했던 주말이면 꼭 들르는 성당 바로 옆이었습니다. 매일 새벽 5시 반이면 수영장에 갔고 주말이면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거의 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그냥 미친 사람처럼 혼자 계속 운동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힘든 일들은 극복하는 동안 시간이 참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한 번 겪은 경험이 비슷한 일을 다시 겪을 때 고통을 줄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저는 제 또래들에 비해 주변인의 죽음을 많이 겪었습니다. 세상을 먼저 떠난 가족들과 친구들이 특이할 정도로 많습니다. 하지만 매번 망자를 떠나보낼 때면 늘 똑같이 힘들었습니다. 하나하나 다 중요한 존재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감정 처리 시스템은 하물며 고장이 날지언정 내성이 생기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번 비슷한 상황에 있습니다. 지난 1년간, 마치 긴 터널에서 희미한 빛을 향해 느릿느릿 힘들게 걷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이 어둠의 끝이 어디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희미한 저 빛이 언젠가는 눈앞에 다가오리라 믿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겪는 이 고통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매번 아프고 매번 힘든 것은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이번 일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상황으로 느껴집니다. 남은 인생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일이기 때문일까요. 고통이 느껴질 때마다 자기혐오와 자책감이 밀려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신이 운명으로 결정하는 거스를 방법이 없는 일로 바꿔버리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이 제 잘못에 대한 사죄는커녕 제가 사죄할 당사자에게 더 큰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간신히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평생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짊어지고 끝까지 가야 하는 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은 그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제 잘못입니다. 지난 몇 년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한 분노와 좌절이 방향을 찾지 못하고 날뛰었습니다. 방향을 잃은 공격성이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냉소적인 자기혐오로 공격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인격적 미숙함의 증거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제가 '제게 어울리는 자리'로 스스로를 이끌었을 뿐이지 세상이나 다른 사람이 한 잘못은 없었습니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운명으로 결정된 일이라며 정신 승리하며 넘겨버릴 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사과를 할 상대도 방법도 없습니다. 참회의 의미로 저 스스로를 학대해 봐야 제 마음의 위안을 얻으려는 과정이 될 뿐이고, 저 스스로가 더 망가져 봐야 그동안 받아온 최소한의 호의를 지워버리는 과정이 된다는 것을 압니다. 망가진 상황을 더 망친다고 마음이 후련해지지는 않습니다. 망가지기 전에 너무나 소중했던 것이라면 더더욱 그럴 겁니다.
이런 글은 일기장에 적는 것이 적합할 내용일 것입니다. 감당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면 아무리 힘들어도 조용히 감내해야 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버릴 곳 없는 짐을 계속 짊어지고 있으려니 너무 힘듭니다. 그저 마음이 찢어지게 너무 후회스러워서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적는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마음이라는 장치에 너무 큰 하중이 계속 걸려있어서 곧 부서져 망가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듭니다. 은둔의 터널에서 혼자 지내며 마음이 너무 힘들 때면 어차피 힘든 상태, 차라리 망가져 버리라는 식으로 스스로를 학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몰아붙여서 마음이 이내 부서져 버리려는 순간, 완전한 파괴를 막은 것은 이제는 의미가 없어진 '좋은 기억'들이었습니다. 과거의 그 '좋은 기억'들은 지금은 제게 고통을 주는 것 말고는 다른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나 소중해서 깨지는 것을 보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는 정말 작은 조각만 남았지만 다시는 구할 수 없기에 더욱 애틋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좋았던 기억들이 인간성을 지켜주기에 지금은 아픈 상태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최소한 인간답게 살려면 아플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제 삶은 과거 어딘가에서 비틀어져서 굳은 채 멈춘 듯 흘러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왜 그때 솔직하지 못했을까?' 후회합니다. 하지만 답은 이미 명확하게 나와 있습니다. 지금도 솔직하지 않은데 그때 솔직했을 리가 없습니다. 일기장 대신 이곳에 글을 적는 이유입니다. 지금이라도 솔직해지기 위해서, 솔직해질 최소한의 동기라도 만들기 위함입니다. 지금 솔직하지 못하면 '지금 솔직하지 못했던 것'을 미래에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그때의 '멍청한 나'는 분명 또 '멍청한 선택'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멍청이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진행될 수 없을 겁니다. 모든 면에서 뒤처지는 저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앞으로는 후회하거나 자책하기보다는 스스로 격려하려 합니다.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좀 모자라고 멍청해도 결국 내 자신으로 살아야 하니까 그래야겠지요.
이런 글 올린다고 무언가 많이 바뀔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성취는 적은 노력이 쌓여야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렇게 글을 쓰는 동안 질질 짜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면서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무언가 교착되어 있던 기계의 톱니가 흔들흔들 떨리는 기분을 느낍니다.
'개인 작업 > 블로그 히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티스토리 오블완챌린지 도전 ! 🐱 (12) | 2024.11.04 |
---|---|
블로그 히스토리 (0) | 2023.09.17 |